유리창

수능이 가까워질수록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. 때 이른 겨울 추위라며 다들 목소리 높여 짜증을 냈다. 나도 패딩과 목도리로 몸을 둘둘 싸매고 다녔다. 나보다 학원에서 더 요란이었다. 영서야, 선생님도 학원 건물에 현수막 좀 걸어보자. 명문대에 들어갈 거라는 기대는 지대했다. 점심 저녁 시간마다 쓸데없는 거 먹고 체하지 말라며 잔소리를 퍼붓더니 주는 것은 또...

그 다음 날, 나는 학교를 쌩깠다. 내가 비범한 땡땡이를 치지만 않았어도 수시를 썼을 거라며, 담임에게 잡혀 욕을 얻어먹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 혼나는 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. 아침 9시가 되도록 등교하지 않은 나를 선도하기 위해 홍조와 경도와 채현이가 돌아가면서 연락이 왔다. 나는 세 명한테 똑같이 답장을 보냈다. [일탈을 할 것이야.] 답장...

그날 이후 홍조는 집요할 정도로 굴었다. 나는 홍조를 피해 다니는 것이 일이었다. 앞뒤로 꼭 붙어있는 탓에 수업 종이 치면 교실에 들어오고 수업 종이 치면 교실을 뛰쳐나갔다. 학원에서도 밥 먹을 때는 신경이 곤두섰다. 죄지은 사람처럼 편의점만 겨우 들렀다가 오고, 흔히 가는 김밥집에서도 혹시나 마주칠까 봐 맛없기로 유명한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. 하는 ...

아침에 병원을 찾아갔다. 비를 오랫동안 맞아 한기를 가득 품고 나타난 나를 의사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았다. “집에서 나오기로 했어요.”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, 선생님도 어쨌든 내 삶에 관여할 권한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. 늙은 선생님은 안경을 벗어들고 눈가를 지그시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. “일단 링거라도 한 대 맞고 이야기하자꾸나.” 맹...

비가 그칠 때까지 카페에 앉아 있다 점원의 눈총이 느껴져 슬슬 일어났을 때는 해가 깜깜해져 있었다. 홍조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는 친구들에게서 다그치는 문자가 왔다. 여행 갈 건지 말 건지 묻는 내용이었다. 머릿속을 굴려서 계산해보았다. 요즘 집에는 계속해서 잘난 형이 머물고 있다. 다니는 직장이 자취방보다 집이랑 더 가깝다는 이유에서였다. 인턴이 정직원...